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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의 참만남
작성자 윤향숙 등록일 2016-02-23 20:17:46 조회수 479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의 참만남

새해 큐티말씀묵상 요45~30

 

사마리아에 있는 수가라는 동네는 이스라엘에서 소외되고, 차별과 수치를 당하는 계층이 사는 가난한 동네였을 것이다.

예수께서 길 가시다가 피곤하여 우물곁에 앉으시고, 제자들은 먹을 것을 사러간 여섯시의 시간에 사마리아 여인과 단 둘만의 만남이 이루어진다. 그러한 만남은 일부러 셋팅하고 구조화해서 연결되는 만남이 아니었고, 어떤 의미에서는 스스로를 사람들로부터 고립시키고,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감추고 싶었던 만남의 시간이며, 장소였다.

물을 달라로 먼저 손 내미시는 예수님의 배려와 존중...예수님의 인사가 없었다면 조용히 얼른 물깃고 그 자리를 피할 수도 있었던 여인에게 우물이라는 중간 매개체를 통해 여인이 당황하지 않을 만큼의 적절한 거리로 다가오신 예수님의 배려가 와 닿는다. 어린아이들은 자신이 무엇이 필요한지, 얼마나 힘들고 외로운지 먼저 도움을 요청할 줄도 모르는 심리적으로 연약한 상태인 내담자들과 같은데 먼저 말을 걸고 먼저 알아봐 주는 것이 배려일 것 같다.

당신은 유대인이면서 어찌하여 사마리아여인에게 물을 달라하나이까?

당신들은 가진 자이면서, 배운 자이면서, 나보다는 높은 신분과 문화에 속한자이면서, 내 도움이라고는 하나도 필요하지 않을 것 같은 분이면서 어찌 내게 도움을 요청하고, 말을 걸어주나니까? 어쩌면 여인이 그 당시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방어기제인 물 깃는 일을 통해 여인에게 마음을 열수 있는 자신감을 주시고 싶으셨던 것은 아닐까?

네가 하나님의 선물과 물 달라하는 이가 누구인줄 알았다면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네게 생수를 주었으리라

진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은 도움을 요청하는 법을 모른다. 도움을 받아본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모대상관계를 경험하지 않았기에 그 부모가 내게 줄 선물이 있는지 조차모르며 그 선물을 달라고 해야 얻을 수 있는지 또한 모른다. 안타깝게도 대상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주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기를 바라시며 여인에게 이후 치유될 언어를 들려주신다. 상담초기에 내담자들은 자신에게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상담목표를 세우는 것조차 어려워하며, 상담을 통해 얻게 될 선물을 상상조차 하지 못할 만큼 상처가 있는 자들이다. 그들에게 치유될 수 있고, 변화 될 수 있고, 선물을 받게 되리라는 상담자의 예언적 언어는 자기암시적인 역할을 하며 도움이 되는 것이다.

물길을 그릇도 없고, 우물은 깊고, 어디서 그 생수를 얻겠습니까? 당신이 야곱보다 크니이까?

나의 자원이 이렇게 부족하고, 지지적인 환경도 없는데 이런 나를 치유 할만큼 당신은 능력이 있습니까? 내가 기껏 상상했던 인물은 매일 물을 기르러 오면서 야곱이라면 내게 생수를 주리라는 정도인데 당신은 그 보다 큰 자입니까? 상담초기와 중기로 가면서 내담자들은 무력감을 느낀다. 그동안 수도 없이 우물을 길었으나 해결 받지 못한 나의 문제에 대한 좌절감과 타인의 능력에 대한 불신으로 저항을 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그 낯선 사람을 통해 치유 받고 싶은 간절한 염원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이 물을 마시는 자는 다시 목마르지 않고, 영원히 목마르지 않고,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예수님의 치유 적이며 자기 충족적 예언과 인생의 가치와 의미를 찾게 해주며, 영원의 관점으로 치료의 현장을 바라보게 해주시는 말씀이신 것 같다.

주여 그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 않고 물 길으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주님의 말씀이 여인의 마음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어 여인도 원함을 갖게 되고, 함께 치료동맹을 형성하게 된다. 여인은 치유의 바닥을 경험한다기 보다는 아직까지는 현실적인 표면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정도의 원함이다. 그것은 아직 자신속의 깊은 갈망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한 단계이며, 그것을 치유 시킬 분의 능력을 제한하는 정도의 대상경험을 하고 있는 중이다.

가서 네 남편을 불러오라나는 남편이 없나이다네가 남편이 없다하는 말이 옳도다. 네게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주여 내가보니 선지자로소이다.

내담자의 아픔과 상처를 그대로 노출시키시고 직면시키시는 예수님, 거짓자기로 자신에게는 늘 남편이 있었다고 생각하며 살아온 여인, 그러나 그 남편과 친밀함도 느끼지 못하고 버려지기도 하고, 버려질까 두려워 먼저 버리기도 하며 짧은 만남, 표피적이고 피상적인 만남과 관계를 맺어온 여인, 그 여인의 마음속에 반복적으로 남겨진 유기우울증과, 분리불안과, 공포, 수치심, 분노로 인한 상처를 늘 물 깃는 행위로 위로하며 언제 발각될까 두려워하며 살아온 삶...

그러한 여인의 삶의 스토리를 그대로 반영해 주시면서 참으로 정직하게 자신을 노출하며, 참자기로 살도록 그 길을 열어주시는 예수님. 야곱보다 큰 자인가 의문을 품었던 내담자의 대상표상이 예수님을 선지자수준으로까지 느끼며, 정직하게 자신을 노출하는 순간....

우리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 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이 산도 말고, 예루살렘도 말고,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참 예배는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것이고,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를 찾으시느니라

아마도 이 여인은 예배에 대한, 하나님아버지에 대한 갈망을 키워왔고, 어디선가 들어왔던 예배라는 참 만남의 장소를 갈망해왔던 것 같다. 소외되고 버려진 땅일까? 아니면 가진 자들과 기득권의 땅일까? 이 사람일까? 저 남자일까? 끊임없이 의문을 품고 예배하기를 기다리고 갈망해왔는지도 모른다. 하나님과의 진정한 참 만남은 무언가를 갖춘 뒤에 갖게 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직면의 참자아가 노출되는 순간, 자신이 얼마나 외롭고, 상처입고, 소외되어 주님 없이는 살수 없는 목마른 자인지 깨닫는 순간, 영과 진리로 드려지는 참예배의 순간이리라.

메시아가 올 줄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알려주시리라네게 말하는 내가 그라

여인의 대상표상이 이제 구세주, 그리스도, 메시아로 바뀌었다. 참자기가 발현되는 순간 참만남이 이루어졌고, 그리스도가 이제 편집적이고, 두려움으로 아무도 신뢰하지 못했던 여인의 마음가운데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그분이 네가 오랫동안 찾고, 갈망했던, 목마름을 채워줄 수 있는 분이시다. 자신을 속이지 않는다면 누구나 만날 수 있는 누구에게나 찾고 싶었던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이다.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들어가서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 그들이 동네에서 나와 예수께로 오더라

진정한 부흥은 내가 먼저 부흥을 경험하고 그만큼만 정직하게 언어로 표현할 때 이루어지는 것이다. 진정한 치유는 상담자가 자신이 치유 받은 만큼 가감하지 않고 물동이를 버려 둘만큼 전념하게 될 때 뒤따르는 현상인 것이다. 바리새인처럼 습관적인 경건의 모양을 보여주어서가 아니라, 행위로 선한 일을 쌓아서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더 먼저 소유한 것처럼 우월하게 누군가에게 나눠주는 것이 아이라, 내가 누구인지..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그 순간에 일어난 주님과의 참 만남의 현장을 그대로 생생하게 묘사할 때 이루어지는 것임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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